"머니로직의 종말, '살림로직'으로 인류의 생존 주권을 탈환하라"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한글과컴퓨터의 신화를 쓴 경영자에서 지구를 살리는 '문명 설계자'로 변신한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자본 중심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시대에 공존과 자립의 '살림셀'로 인류의 새로운 베이스캠프를 제안하는 그의 통찰을 담아봤습니다.
대한민국 벤처 역사의 산증인,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이 다시 한번 시대의 나침반을 들었습니다. 그는 과거 '한글과컴퓨터'를 구한 경영자를 넘어, 이제는 기후위기와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인류의 생존 방식을 재설계하는 '문명 설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저서 《돈이 당신을 지켜주지 못할 때》를 통해 그는 자본 중심의 '머니로직'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선언하고, 공존과 자율의 '살림로직'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시스템이 붕괴되는 순간에도 우리를 지켜줄 진정한 자산은 무엇인지, 전하진 이사장이 그리는 미래의 베이스캠프 '살림셀'의 비전을 CEO투데이가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Q1. 이사장님, 최근 신간 《돈이 당신을 지켜주지 못할 때》를 출간하셨습니다. 책 제목부터가 매우 강렬한데, 이 시대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던지고 싶었던 화두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토록 맹신해 온 자본이라는 울타리가 과연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문명의 전환기에도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성장을 이루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믿으며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기후 위기와 양극화 그리고 AI 혁명이라는 유례없는 다중 위기 앞에서 기존의 방식은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이제는 소유와 축적의 시대를 지나 어떻게 서로를 살리고 공존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삶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Q2. 책에서 기존의 '머니로직(Money Logic)'이 파산에 이르렀다고 진단하셨습니다. 우리가 맹신해 온 자본주의 시스템이 왜 더 이상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한다고 보시는지요?다중 위기
지배, 성장,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머니로직은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팽창을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자원의 고갈과 심각한 불평등을 야기하며 시스템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세상에서는 지구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의 존엄이나 자연의 가치가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결국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우리가 쌓아 올린 자본의 탑이 오히려 우리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청소년기 이후에도 성장이 멈추지 않으면 말단비대증이라는 병으로 악화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제는 성장을 멈추고,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3. 대안으로 제시하신 '살림로직(Salim Logic)'이라는 개념이 신선합니다. '살림'이라는 한국 고유의 철학을 현대적 생존 전략으로 승화시킨 배경이 궁금합니다.
살림은 타자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우리의식(We-ness)의 실천적 언어입니다. 무심결에 입에 달고 사는 우리는 ‘확장된 나의 개념’이며 이것이 영어의 We와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들으면 매우 이상하게 들릴 ‘우리 남편, 우리 부인’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살림문화는 위기 때마다 큰 힘을 발휘하여 대한민국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살림이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각박한 머니로직의 대안으로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상생의 지혜를 현대적인 시스템과 접목한다면 위기를 극복할 강력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를 체계화하게 되었습니다.
Q4. 미래의 베이스캠프로 제안하신 '살림셀(Salim Cell)'은 에너지와 식량을 자립하는 소규모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형태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우리의 삶터, 즉 도시는 고분자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의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지만 사실은 위기에 취약한 구조입니다. 공룡과 개미떼를 비교해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살림셀은 바로 개미떼와 같이 기본 삶터가 최소한의 생존 기반을 스스로 확보하는 자립형 공동체로 재구성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세포들로 구성된 유기체와 같은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입니다. 세포는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세포막을 굳게 닫아 내부를 보호하고 필요하면 열어서 인근 세포들과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하면서 거대한 유기체를 형성합니다. 인간도 이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요. 만약 우리의 삶터가 살림셀 형태로 전환된다면 이를 통해 사람들은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내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가치 노동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살림셀은 경쟁 중심의 도시 삶을 공동체 중심의 여유로운 삶으로 바꾸는 문명의 새로운 표준이 될 것입니다.
Q5. SDX재단 이사장으로서 '민간 주도 자발적 탄소감축'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정부 규제가 아닌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기후위기 해결의 핵심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부의 규제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 변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현장에서 움직이는 민간의 몫입니다. 규제에 의한 감축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저희들은 진정한 기후위기 대응은 대중의 인식과 행동 전환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그에 맞는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보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각 탄소 크레딧(MCC; Mini Carbon Credit)이나 ESGG(Ethical Sustainable Global Good)와 같은 프레임워크의 개발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다중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탄소감축 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살림셀(Salim Cell)을 기반으로 하는 살림자본주의, 살림사회로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많은 재능, 재정 후원자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Q6. 재단에서 추진 중인 조각탄소크레딧(MCC), 살림셀 등이 기후테크 기업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탄소 감축 성과를 자산화하는 과정의 핵심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사실 기후테크 기업들은 배타적인 시장에서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제품들이 비용구조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재단의 조각 탄소 크레딧은 바로 이런 점을 보완하는 형태의 탄소 크레딧입니다.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만 가능한 기후테크 기업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MRV(Measure, Report, Verification)를 근간으로 하는 조각 탄소 크레딧을 기반으로 하는 살림셀이 자본시장에 새로운 상품이 된다면 아마도 폭발적인 전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Q7. 최근 '리월드포럼(ReWorld Forum)' 등을 통해 기후행동의 대규모화를 주장하셨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탄소 무역 장벽을 넘어 기회로 삼기 위해 당장 실천해야 할 '골든타임' 전략은 무엇일까요?
시대의 대전환은 작은 단위의 성공으로부터 비롯됩니다. PC와 인터넷의 탄생은 인류의 디지털 세상을 확장시켰고, 스마트폰은 디지털 세상을 우리 신체의 일부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삶터를 새로운 구조로 전환하여 이를 확산함으로써 대전환을 가능케 해야 합니다. 저는 그러한 기본 단위가 살림셀(Salim Cell)이라고 정의합니다.
살림셀은 메인프레임과 같은 도시를 PC같은 살림셀의 네트워크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복력이 강화되고, 지속 가능한 삶터가 만들어집니다. 기존 산업의 다양한 제품들이 살림셀용으로 전환된다면 살림셀의 확산과 함께 새로운 시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팔리면서 카메라 수요는 줄었지만 카메라 렌즈는 스마트폰에 부착되어 엄청나게 팔리는 것처럼 기존의 제품을 살림셀용으로 특화하여 새 시장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8.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입니다. 이사장님은 이를 대비해 'Deep Job(가치 노동)'을 제안하셨는데,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제가 AI를 처음 접했을 때는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하듯이 정답을 찾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궁금증을 마구 질문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마치 똑똑한 친구나 교수 몇 사람과 늘 대화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느낌으로 AI를 만납니다. 제 주변에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많아도 내 그릇이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커피숍에 옆 테이블 손님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인간은 자신만의 장르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아되는 것입니다.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하는 등의 일상의 반복 속에서 자신의 달란트가 발아됩니다. 그것을 깊이 파고들어(Deep Job), 나만의 고유한 장르를 창조하는 것이 미래의 진정한 업이 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딥 잡을 통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장르를 창조함으로써 장르마스터(Genre Master)가 됩니다. 이미 우리는 이런 장르 마스터를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길을 추구하는 자들을 살림가(Salimist)라고 부릅니다.
Q9. 내면 역량으로 강조하신 SERA(Story, Empathy, Resilience, Achievement)는 미래 인재들에게 필수적인 덕목으로 보입니다. 경영자들이 조직원들의 SERA 역량을 어떻게 이끌어내야 할까요?
앞으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돈이 아닌 지구적 선을 추구하는 자들이 존경받는 세상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ESGG(Ethical Sustainable Global Good) 즉 지구적 윤리관에 따라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지구적 선을 추구하는 비전을 추구하는 자들의 세상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시대가 변하면 기업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얼마나 ESGG를 실천하는 조직인지를 내세울 수 없다면 아마도 고객이나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ESG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긴 하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이 불분명합니다. “돈이냐 지구적 선이냐”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명확한 지구적 선이라는 비전에 동참할 수 있는 자들로 조직원이 구성된다면 그 조직은 자발적으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SERA라는 덕목을 지닌 자들이 조직의 비전에 동참하는 경우에 그 조직의 성과를 상상해 보십시오. 결국 이제는 조직의 목표를 지향하는 기능은 사오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 선을 지향하는 조직의 일원으로 함께하는 유기체적 조직으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10. 벤처 1세대로서 '한컴 신화'를 쓰셨던 경험이 현재 SDX재단의 혁신적 활동에 어떤 밑거름이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글과 컴퓨터를 통해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지혜와 경험을 쌓았다면 지금 SDX 재단을 통해서는 문명의 운영체제 자체를 바꾸는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벤처 기업을 운영하며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혁신의 경험은 기후 위기라는 거대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의 힘을 결집하는 데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이롭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저의 혁신 철학입니다.
Q11. 부동산 박사 학위를 받으시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주거환경'을 연구하셨습니다. 기술과 인간의 삶이 조화를 이루는 미래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미래의 도시는 거대하고 화려한 콘크리트 숲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따뜻한 공동체의 집합체여야 합니다. 제가 연구한 미래 주거 환경의 핵심은 바로 살림셀입니다. 첨단 기술이 주거 공간에 녹아들어 에너지와 식량을 자립하게 함으로써 인간이 생존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기술은 철저히 인간을 보조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며 도시 전체가 자연과 순환하고 공존하는 생태계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Q12.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안해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CEO와 리더들에게 이사장님이 꼭 전하고 싶은 격려와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의 불확실성은 단순히 경제적인 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통입니다. 당장의 이익과 성장에만 매몰되는 머니로직의 관점에서는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사람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살림로직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면 그 안에서 무궁무진한 기회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익의 극대화’라는 머니로직 적 목표를 지양하고, ‘지구적 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 뜻에 동참하는 동지들과 함께 유기체적 조직으로 가치를 지향하는 가운데 돈과 명예가 선물로 되돌아오는 구조적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살림가와 살림조직이 많아졌을 때 인류사회는 그야말로 지속가능하고 풍요로운 살림, 풍유, 윤리의 살림로직이 이끄는 살림사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후세들을 위해 리더 여러분이 먼저 용기를 내어 가치 있는 변화를 이끌어 주십시오.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날갯짓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혁신적인 도전이 대한민국과 지구촌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